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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동안 일어난 일들

감금 1주차

by 동물들의친구 2020. 4. 2.

집에 갇힌 사람들 <봄 방학 계획 / 실제 봄 방학>

 

 

오늘도 장을 보러 나갔다 왔다.

락다운이 내려진 영국이지만,

식료품이나 약을 사러 간다던가, 아니면 러닝 정도는 하러 나갈 수 있는 영국이다.

(느낌상 코로나 사태 전 보다 저녁에 러닝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틀에 한번씩은 장을 보러 나간다.

한 번에 필요한걸 전부 사 오는 게 안된다.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아 맞다, 이거 먹어야 하는데 하고 먹을 게 생각난다.

 

그런데 오늘 자주 가던 마트가 입을 닫아 버렸다.

읍!

가게 외벽을 나무 판자로 막아놨다.

Sainsburys 라는 영국의 유명한 편의점(?) 마트다.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가게 문을 닫았는데 사람들이 유리를 깨고 테러를 일삼을까 봐

이렇게 나무판으로 가려 놓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가려놓은 게 아니라 나무판자를 못으로 박아서 벽을 한 겹 더 세운 상태)

 

귀찮지만 5분 정도 더 걸어서 다른 조금 더 싸고 큰 가게로 가본다.

 

Social distance 2m 열심히 실천중

이야 재밌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한 번에 30명까지만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게 통제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파란 선에 맞춰서 줄 서 있다.

 

장을 보고 집에 왔다가,

한인 마트에서만 파는 현미와 잡곡 그리고 청양고추를 사러 한인 마트로 향했다.

비둘기의 그것들, 그리고 담배?

길거리는 점점 더러워진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업무 중지가 됐거나 적은 인력으로 일을 하시거나 하는 듯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타지 않는 건 아니다.

마침 내가 사진 찍을 때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맨체스터의 한인마트 '오세요'

한인마트 '오세요'.

오세요, 네.

이름이 '오세요'인 한인마트다.

 

백미, 현미, 잡곡 등 무거운 쌀을 사고 청양고추도 사고 밥 해 먹기 귀찮을 때를 대비한 냉동식품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편의점 한 곳에 더 들린다.

파를 사기 위해서.

한인 마트의 파는 영국의 다른 마트보다 비쌌다.

 

오늘 참 여러 곳을 많이 들렸지만,

아무와 이야기하지도, 접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국에 있다는 지리적, 언어적 이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

...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는 채로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쌀알을 느끼며 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를 발견했을 때,

왜 인지는 모르겠다.

이전에 이 마트에서 파가 있는 가판대 아래 누가 토를 해놨고 그때 맡았던 냄새가 훅 떠올랐다.

나는 잠시 주춤하고, 그냥 파를 지나쳤다.

파, 파는 아무 영문도 몰랐으리라...

 

파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에코백에 담긴 쌀포대가 너무 무거워서

빠른 걸음으로 가게 문을 나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뒤에서 헤이가 들려온다.

헤이

헤이!

익스큐스 미!

헤이, 헤이를 지나치고 익스큐스 미, 에 뒤를 돌아봤다.

요즘 가게마다 앞에 큰 가드(?)가 있다.

원래도 있었지만 요즘은 큰(?) 가드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가게들이 보통보다 더 큰 가드 아저씨들을 데려다 놓은 듯하다.

인원을 통제하려고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뒤를 돌아봤고, 그 아저씨는 말했다.

유 오케이?

예, 와이.

사실 이때 이미 이유는 짐작됐다.

아무것도 안사고 스윽 둘러보고 어깨에 무거운 에코백을 메고 나가니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렇게나 빠른 손을 가지고 있었으면 이런 데서 물건 안 훔쳐 이 양반아, 더 작고 귀한 걸 훔치지...)

 

아무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의심은 기분 좋지 않다.

가뜩이나 쌀 포대 무거워 죽겠는데...

what did you buy? 뭐 샀냐고 묻길래

I didn't buy anything 아무것도 안 샀다고 하니까

nothing? 아무것도? 되물으며 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고

Ye, you wanna see? 예, 보시던가요, 하니까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보다 한참 높이 있는 머리에서 나온다.

why,

???????????? why? 왜? 왜는 무슨 왜야...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토 냄새가 갑자기 났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파를 사려다가 갑자기 옛날에 맡았던 냄새가 떠올라서 그냥 나왔다고 말하면... 이게 솔직하지만, 아저씨 입장에서 믿기에 괜찮은 스토리 라인인가?

나는 고민했다.

 

가드는 내 옆으로 다가와 내가 열어준 에코백 사이를 슥, 훑어봤다.

백미, 현미, 잡고오오오옥! 청양고추!!!!

아저씨가 지키는 마트에선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물건들일 테지...

약 2초 정도의 짧은 '검사' 후에

오케이! 한 마디가 나를 보냈다.

쏘리도 없고 오케이만 던지고 뒤돌아 가는 가드를 보며,

나도 그냥 뒤 돌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돌아 집으로 걸어가다 한 번 더

내 발걸음을 멈추는 아저씨를 봤다.

이 아저씨는 아까 아저씨보다 작고 힘없고, 무엇보다 가게 앞에 '앉아'있다.

한 사람은 가게 앞에 서서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한 사람은 가게 앞에 앉아서 사람들을 멈춰 세운다.

change please, 잔돈 남는 것 좀 주세요.

sorry 죄송합니다.

It's alright, thank you. Have a good day.

보통 노숙자들은 돈을 못 받아도 늘 have a good day는 대답으로 돌려준다.

 

아저씨, 지금 이 나라는 정말 필수적인 일이 아니면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게 금지인데요,

 

노숙인은 homeless라고 부른다.

home 집이 less 없다. 

길거리에 나오는 사람들도 없으니

수입도 없다.

 

나는 아저씨를 지나쳐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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