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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동안 일어난 일들

안되더라도 해보기 - 직업 구하기

by 동물들의친구 2020. 3. 14.

2017년 여름, 방문학생으로 처음 영국에 왔다.

의사소통이 답답했지만, 그 당시에는 외국에서 영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설레서 불편한 것도 몰랐다.

영어는 하다 보면 결국 늘게 된다고 몇 년 후의 나에게 제멋대로 부담을 지웠더랬다.

'한 이년 정도 후에는 영어 진짜 잘하겠지, 뭘'

뭘.

뭘, 뭘. 도대체 뭘 믿고 그랬니?

 

이년도 더 지난 오늘은 2020년 3월이다.

허무한 3월이다. 이 허무함은 뭔가 새롭다.

허송세월을 보낸 데서 온 감정은 아니다.

'나름'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에서 허무함이 불쑥 머리를 내민다.

'나름'

'나름'이 문제였을까.

제대로, 누구보다, 그리고 미친 듯이 공부해야만 했던 걸까.

'나름'과 '제대로, 누구보다, 그리고 미친 듯이' 사이의 간격이 이렇게나 먼 것일까.

 

사실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은지도 꽤 됐다.

하다가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다가도 했다.

학교생활에 바빴고, 언제나 그래왔듯 이곳저곳에 쏟는 감정 문제에 휘둘려 바빴다.

이 바쁜 틈에서 '나름'이 피어났다. 

그러나 나름 열심히 한 정도로는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고,

나름 열심히 한 정도로는 스스로 만족되지 않았다.

영어 실력도 딱 '나름' 늘어난 정도다.

 

요즘 이런 허무를 느끼는 이유는 본격적으로 졸업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작년부터 찾아보고 있었는데, 봉사활동이나 Work placement, 한국말로는 없는 듯하다, 말고는 제대로 된 입사 지원을 해보지 못했다.

 

우연히 지난주에 눈여겨보던 기관에 인턴쉽 자리가 나서

어제오늘은,

'제대로, 누구보다 그리고 미친 듯이' 여기에 '열심히'까지 넣어서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영영사전을 펼치고 단어를 찾고 내가 의도한 뉘앙스인지 꼼꼼히 살펴본다. 유튜브와 구글과 학교 취업상담소에서 받은 팜플렛에 등장하는 표현들로 열심히 문장을 조립해 본다. 출신이 다른 문장들이 한 데 모이니 시끄럽다. 나는 이들을 데리고 종일, 세명 모여! 네명 모여! 좌로 밀착! 우로 밀착! 극기훈련 중이다.

 

나는 쓸데없이 정직하다.

대충 작성하고 번역기를 돌리지 그래? 원어민 전문 첨삭 서비스도 있어. 한국에 번역, 교정 서비스를 맡기지 그래? 일단은 회사 들어가는 게 먼저 아니야?

나는 그게 아닌가 보다.

 

또, 나는 쓸데없이 스스로에게 모질다.

석사를 하러 오기 전, 아이엘츠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라이팅 점수만 계속 0.5 점이 모자랐다.

아이엘츠 시험은 한 번에 20만 원 이상의 거금이 들지 않는가?

이런 시험에서 계속 0.5 점이 모자라, 사실 아이엘츠에서 0.5점은 적은 점수가 아니지만, 두 번 세 번 시험을 연달아 봤으니,

나는 당시 스스로에게 화가 날 대로 났다.

학교에서는 합격 통보를 받았고, 영어 성적만 최종으로 제출하면 됐다.

규정상 합격 통보를 받았다면, 0.5점의 점수 차이는 학기 시작 전에 language centre에서 5주 미리 수업을 듣는 조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마음가짐은,

두 번. 두 번 남았다. 두 번 내에 기준 점수를 받지 못하면 합격이고 나발이고 유학 가지 않겠다!,였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나는 그때,

학교에서 요구하는 영어 기준 점수도 맞추지 못하는데, 혹은 겨우 기준 점수나 맞춰 가면서 무슨 석사 공부를 하려 하냐,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석사를 하기 전, 이미 동대학에서 2017년도에 일 년 교환학생을 하며 언어장벽의 지옥을 경험한 기억이 있었기에,

에세이, 글쓰기 위주의 영국 대학에서, 아이엘츠 라이팅 점수도 못 받으면 제대로 된 석사 공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

 

서론이 무척 길었다.

이유는 그동안 한국말로 글을 무척이나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제오늘 인턴십 지원서를 작성하며 또 영어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쓸데없는 정직함을 또 느낀다.

회사 가서 친구들에게 매번 이메일 첨삭을 부탁할 텐가? 회사 가서 회의 시간에 혼자 내용 못 알아 들어서 집중력 잃고 속으로 울 텐가? 일 못하기도 전에 말 못 하는 바보로 소문날 건가?

나는 이런 게 너무 싫다.

'이 수준에서 취직은 못된 욕심이야.'

'인터뷰하고 합격하더라도 며칠 일하면 밑천이 다 드러날 게 뻔해.'

'내가 인사 담당자라면 나를 뽑겠나?'

모르겠다.

내 안에서 이런 말이 자꾸 샌다.

 

글이 길어졌다.

근데 결론은 제목과 같다.

지금 지원해도 안되는 걸 알지만 한다.

결과는 모르는 거니까?

그런 반 희망적인 이유보다는,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냥 한다.

조금이라도 호감이 가는 일은, 시도하고 배워본다.

학교생활 힘들지만 좋아해서 하고

외국 생활 힘들지만 아직까진 흥미롭기에 계속하고

일도, 영어도 고통스럽지만 좋아하니까 계속 배우려고 한다.

어렵고 안되는 걸 아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나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누구보다 그리고 미친 듯이' 좋아해서에 가까워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해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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