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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동안 일어난 일들

논문 포스터

by 동물들의친구 2020. 5. 18.

논문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해주는 이벤트(?) 중 하나였나.

 

학생들은 자신의 논문 주제를 포스터로 만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수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물론 글로 된 논문 제안서를 먼저 작성하고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시각효과를 주는 포스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포스터 제작을 위한 교육도 학교에서 따로 해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4월 easter break 이전에 학생들은 학교의 IT 부서 직원을 통해

포스터 제작 워크숍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아버리면서.......

일주일, 이주일, 삼 주일이 밀렸고 한 달도 더 지나서 ZOOM으로 화상 워크숍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IT 부서에서는 Adobe Indesign이라는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해주셨고 프로그램 소개도 잘해주셨다.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하는 프로그램 내의 기능들을 정말 하나하나 설명해주셨고,

그 설명을 4개의 동영상으로 나눠서 구글 Dropbox에도 올려주셨다.

물론 ZOOM 워크숍 당시에 질문할 시간도 충분히 있었다.

 

한 가지 일화로,

Zoom으로 화상 워크숍을 진행 중이었는데,

이 세션은 IT 직원분이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공유하며

10-15분 정도 어떻게 사진을 넣고 글을 넣고 디자인하는지 설명해주시고

잠시 얼굴 보며 질문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또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공유하여 10-15분정도 다른 기능을 알려주시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세션은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두 번째였나 세 번째 중간에 얼굴 보며 질의응답하는 타이밍에

이 직원이 뭔가를 마시는 것이 아닌가...?

와인잔에 보랏빛 와인색의 어떤 액체를 마시는 것이었다.

와인잔에 와인색의 액체라면 당연 와인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어???

아니 수업 중에 술을 마시나?

와...

외.. ㅋㅋ.. 외쿸 스타일? 이렇게까지 프리 하냐....

나중에 수업 익명으로 수업 피드백 설문조사를 할 때, 다 좋았고 술 마시면서 하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답변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내 눈을 읽었는지 직원분이

 

어어..! 잠시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거 와인 아닙니다? 체리 주스입니다. 제가 원래 컵을 이렇게 씁니다!!! 학생분들 오해하지 마십시오!!!

 

세션에는 나 포함 6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다들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웃음이 터졌지만 계속 목 근육을 푸는 척하며 얼굴을 밑으로 숙이고 입술에 힘을 바짝 주었다.

 

 

아무튼,

이런 일화도 있었고 Adobe Indesign 포스터 제작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포스터를 만드는데 그렇게 큰 프로그램 운용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쓸 글도 있고 그림들이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나는 안심을 했다.

포스터 제출기한까지는 일주일 조금 넘게 남았었고

나는 당시에 쓰고 있던 에세이를 더 먼저 끝내야 했다.

때문에 나는 에세이에 집중을 했고,

포스터 제출 삼 일 전에 포스터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Indesign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내가 원하는 효과들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것 아닌가!!!!

내가 그린 포스터 도안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디자인해야지 하고 아이패드에 그려놨었는데 Indesign으로는 이렇게 표현하기가 좀 까다로웠다.

물론 내가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해서였겠지만...

나는 고민했다.

디자인을 다시 짤 것인가 아니면..........

 

사실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 달이나 연기되고 화상으로 진행됨에 따라 교수님께서는 디자인을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을 테니 콘텐츠에 신경을 써라. 원래는 Indesign으로 만드는 게 원칙인데 이번에는 파워포인트로 만들던지 다른 디자인 프로그램들로 만들던지 모두 허용하겠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과목의 성적에 그렇게 신경 쓰고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아이패드에 Goodnote라는 노트필기 앱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땀 한땀

코뿔소와

코끼리와

사람들을...

뿔이 잘린 채 누워있는 코뿔소
뿔이 잘렸고 죽었다. 코끼리의 코는 쓰러진 얼굴에 깔려 맥없이 뭉개졌다. 

그리다 보니 좀 그려진다...?

그림을 그리며 느낀 것이,

거의 6-8시간을 종일 그렸는데

이게 스트레스 해소하는데 아주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매일 영어 자료를 머리 깨져라 읽고 영어로 에세이 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슥삭슥삭 그리고 색칠하고 명암 넣고 계속 시각적으로 결과물이 보이니까

에세이를 쓰는 거에 비해서 성취감이 더 들었다.

색을 입히니 더 슬퍼보인다
땅과 피부에 고인 눈물과 피의 자국, 그 명암이 아주 인상깊다

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이렇다.

 

 

생각보다 잘 그렸고 처음 계획한 대로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제대로된 B급 영화 포스터, B급 감성인듯 싶다 ㅎㅎ

 

교수님께서 그림 네가 직접 그린 거냐, 그림이랑 디자인이 아주 인상 깊다. 딱 보고 어떤 콘셉트인지 잘 알겠다는 칭찬을 해주셨다.

내용면에서는 그다지 칭찬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 단계에서 칭찬보다는 질타가 이롭다.

정작 나를 짜증나게 한건 스스로 주제 발표를 잘 못했다는 것이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한 이틀 정도 우울했다.

하지만 발표는 이미 지난 일....

논문이나 잘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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